2013년에 첫 방영된 일본 드라마 '리갈하이'의 스페셜 에디션 촬영지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10년도 넘은 드라마지만 우연히 보게 된 후 완전히 빠져버렸거든요. 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의 거침없는 말투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불편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그게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SP 시즌에서 다룬 학교폭력 이야기는 보고 나면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학교폭력 에피소드의 핵심 무대, 우사기가오카 중학교
리갈하이 SP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촬영지는 시즈오카현 스루가군 나가이즈미정에 위치한 구 나가이즈미 고등학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우사기가오카 중학교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학교폭력 사건이 전개됩니다. 저는 실제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드라마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드라마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학교 앞에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합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이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는데, 바로 그 학생들이 한 친구를 집단으로 따돌리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죠. 여기서 집단괴롭힘(Bullying)이란 한 명 또는 소수의 학생이 지속적으로 다수에게 신체적, 정서적 공격을 받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촬영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건, 학교 건물 자체는 평범한 일본 지방 고등학교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곳이 갖는 상징성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교육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대니까요. 실제로 2023년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학교폭력 인지 건수가 61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한 수치로, 드라마가 다루는 문제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를 본 후 이곳을 방문하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화면으로만 봤을 때는 그냥 드라마 속 장소였는데, 실제로 서 있으니 "정말 저 계단에서 학생들이 합창했구나", "저 교실에서 폭력이 일어났다는 설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드라마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코미카도의 직설적 변론이 펼쳐진 법정, 국립과학박물관
법정 드라마니까 법정 장면 촬영지는 빠질 수 없죠. 리갈하이 SP에서 법정 장면은 도쿄 다이토구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과학박물관 우에노 본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코미카도 켄스케 변호사가 "학교폭력은 근절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우리 모두 노력하면 학교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잖아요. 하지만 코미카도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여기서 '근절 불가능론(Impossibility of Eradication)'이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주의적 관점을 의미합니다.
국립과학박물관은 실제로는 과학 전시 공간인데, 드라마에서는 법정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건물 내부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법정의 엄숙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을 때도 높은 천장과 웅장한 구조가 법정의 권위를 느끼게 하더라고요.
드라마 속에서 코미카도는 "때리고 욕하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무관심도 폭력이다"라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 부분이 저한테는 정말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보고도 모른 척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게 바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죠.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개인이 타인을 돕지 않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2022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목격 후 방관한 학생이 47.3%에 달했습니다. 절반 가까운 학생이 폭력을 보고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코미카도의 변론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승리만을 추구하는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의 매력
코미카도 켄스케는 "나는 무조건 이긴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드라마 내내 한 번도 지지 않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게 참 신기한 게 미워할 수가 없어요.
드라마 속에서 코미카도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스파이를 고용하고, 변장을 하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여기서 '소송전략(Litigation Strategy)'이란 변호사가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립하는 종합적인 계획과 전술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법리적 논리와 증거 수집에 집중하는데, 코미카도는 여기에 심리전, 여론 조작, 상대방 약점 파악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 코미카도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는 능력입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이용해요. 이건 단순한 법률 지식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소송심리학(Psychology of Litigation)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재판 과정에서 판사, 배심원, 증인 등의 심리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코미카도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에 대한 집착입니다. 드라마 내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 그게 그냥 코미카도라는 캐릭터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코미카도의 승소율이 100%라는 설정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드라마적으로는 필요한 과장입니다. 실제로 미국 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 통계를 보면 최상위 로펌 변호사들도 승소율이 70~80% 수준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니까요. 코미카도의 완벽한 승리는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주는 장치입니다.
SP 시즌이 던지는 충격적 메시지, 학교폭력 근절 불가론
리갈하이 SP 시즌의 결말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보통 드라마라면 "피해자가 정의를 찾고, 가해자가 벌을 받고, 모두가 반성하며 학교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교훈으로 끝날 텐데,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코미카도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폭력은 없앨 수 없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계층이 생기고, 약자가 생기고, 그 약자를 향한 폭력이 생긴다. 이건 인간의 본성이다." 이 발언은 교육학계에서 논쟁이 되는 '사회진화론적 학교폭력론(Social Darwinism in School Violence)'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이는 학교폭력을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불가피한 산물로 보는 관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노력하면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학교폭력이 계속 일어나는 걸 보면 코미카도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학교폭력 통계를 보면 답답한 게 사실입니다. 한국의 경우 교육부가 매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는데, 피해 응답률이 지속적으로 1% 전후를 오갑니다. 정부와 학교가 온갖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도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코미카도는 "학교폭력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피해자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현실적인 접근이죠.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제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누군가를 직접 괴롭히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깨끗한 건 아니더라고요. 무관심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물론 제 살고 먹기도 바쁜데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관심을 쏟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 눈앞에서 누군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하게 됐습니다.
리갈하이 SP 시즌을 본 후 촬영지를 직접 방문하니 드라마의 메시지가 더 깊이 와닿았습니다. 단순히 재미있는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학교폭력이라는 사회 문제에 대해 불편하지만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시즌 1, 2를 거쳐 SP까지 정주행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코미카도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는 덤이고, 학교폭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