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도 한국판 꽃보다 남자가 방영될 때 예고편을 유료로 구매해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매주 방송을 기다렸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꽃보다 남자 이야기만 했습니다. 문구점마다 굿즈가 가득했던 그 시절, 일본 원작 드라마의 촬영지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본판 꽃보다 남자에 등장했던 실제 촬영 장소 세 곳과 그곳에서 펼쳐졌던 드라마 속 이야기를 제 경험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영덕학원 촬영지, 성게이대학의 이중성
드라마 속 영덕학원은 재벌 자녀들만 다니는 명문 사립학교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명문 사립학교'란 일반 학생이 입학하기 어려운 폐쇄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엘리트 양성 기관을 의미합니다. 실제 촬영지는 도쿄도 무사시노시에 위치한 성게이대학(成蹊大学)으로,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사립 명문대학입니다. 제가 처음 이 장소를 알게 됐을 때 가장 놀라웠던 건, 드라마에서 보여준 학교의 화려함이 과장이 아니라 실제 캠퍼스 그대로였다는 점입니다.
성게이대학은 1912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특히 법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츠쿠시가 처음 이 학교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충격은 제가 실제로 고급 사립학교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넓은 잔디밭, 유럽식 건축물, 최신 시설이 갖춰진 도서관까지, 일반 공립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교육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츠쿠시가 이 학교에서 느꼈을 자괴감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제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학비 문제를 떠나서 매일 고급 브랜드로 무장한 친구들 사이에서 심리적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계급 간 격차를 영덕학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각적으로 극대화했습니다.
츠쿠시의 집, 서민 계층의 상징
마키노 츠쿠시가 살았던 곳은 도쿄도 네리마구 아사히오카 1초메에 위치한 낡은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여기서 '아파트 단지'란 일본식 표현으로, 우리나라의 다세대 주택이나 연립주택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이미 노후화된 건물이었고, 현재는 철거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과거 자료 사진을 찾아봤을 때 이 건물은 1970년대 일본의 전형적인 저소득층 주거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외벽 페인트가 벗겨지고, 좁은 복도, 작은 창문 등 츠쿠시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배경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츠쿠시가 이런 집에서 생활하다가 영덕학원의 호화로운 교실과 학생 식당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 문화적 충격(컬처 쇼크)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주거 환경은 계층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2024년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도쿄 내 주거비 격차는 지역에 따라 최대 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츠쿠시의 집과 도묘지의 저택은 이런 극단적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배경 설정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크게 높입니다. 단순히 가난한 여주인공이 아니라, 구체적인 주거 공간을 통해 그녀의 생활 반경과 경제적 한계를 시청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묘지 저택, 재벌의 스케일
드라마 속 도묘지 츠카사의 집으로 등장한 곳은 후쿠시마현 이와세군 텐에이무라에 위치한 British Hills입니다. 여기서 'British Hills'란 영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테마형 리조트 호텔을 의미하며, 실제로 중세 영국풍 건축물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제작진이 세트장을 따로 짓지 않고 실제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촬영했다는 점입니다.
British Hills는 1994년 개관한 영어 교육 및 문화 체험 시설로, 약 7만 3천 평방미터 규모의 부지에 중세 영국식 성과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도묘지 가문의 권력과 부를 시각화하기 위해 이만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화면에 담긴 넓은 정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웅장한 건물 외관은 일반 가정집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제 생각에 한국으로 치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총수 가문의 저택과 비슷한 스케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 설정상 도묘지 가문은 일본 4대 재벌 중 하나로, 부동산, 호텔, 금융업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 기업집단입니다. 이런 배경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이 실제 대규모 시설을 섭외한 것은 제작비 측면에서도 상당한 투자였을 것입니다.
촬영지 세 곳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덕학원: 성게이대학(도쿄도 무사시노시) - 명문 사립의 화려함
- 츠쿠시의 집: 네리마구 아파트 단지(현재 철거) - 서민 계층의 현실
- 도묘지 저택: British Hills(후쿠시마현) - 재벌의 압도적 스케일
지금 다시 꽃보다 남자를 보면 솔직히 대사도 오글거리고 전개도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가 멈추길 수십 번 했지만, 그때 그 시절 제가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드라마 속 촬영지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계층 간 격차, 사랑의 장벽, 성장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어리숙한 도묘지의 순수함이 궁금하시다면, 일본 원작도 한 번쯤 감상해보시길 추천합니다.